※ 본 글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문헌 및 미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 오혁진 평론가
편집: TYA LAYER 편집부
마츠모토 타이요의 자기 반영적 여정: 장르 전복에서 평면성의 실현까지
나는 한동안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에 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작품을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더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미 창작의 정점에 도달해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릇된 판단이지만, 당시의 생각이 전적으로 터무니없던 것은 아니었다. 『철콘 근크리트』는 칸의 연쇄와 서스펜스를 단단히 결합해 숨 막힐 정도로 빠른 추격전을 선보인 바 있으며, 이어 『핑퐁』에서는 공을 직선의 선으로 환원시키며 칸과 칸 사이의 운동성을 말 그대로 폭발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년기에 고착되었다가 성인기로 이행하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빌둥스로망(Bildungsroman)*은 『GOGO 몬스터』에 이를 때쯤이면, 주인공의 내면과 반향하며 머뭇거리는 기표들로 범람하는 학교-공간을 구축한다.
그런데 뒤늦게 마츠모토 타이요의 후기작인 『루브르의 고양이』, 『써니』, 『죽도 사무라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경일일』을 읽고서,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고정된 형식에 순응하는 작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해 온 작가였다. 이후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그는 이 일련의 후기작을 통해 선(線)에서 면(面)으로의 전회(轉回)를 성취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마츠모토 타이요의 성숙함으로부터 ‘말년의 양식’*을 떠올릴지 모른다. 물론 에드워드 사이드가 언급한 말년의 양식은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마츠모토 타이요의 관조적인 후기작과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간과 성장의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말년성이라는 개념은 마츠모토 타이요를 말년성의 형식을 창조 중인 만화가로 바라보게 하고, 이를 통해 40여 년에 걸친 창작 여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찰하게 만든다. 마츠모토 타이요가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던 타카노 후미코*는, 매 작품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기존의 양식을 파괴하려는 의지를 가졌던 작가였다. 그런 점에서 타카노 후미코에게 던졌던 질문을 이제 마츠모토 타이요에게 되돌려보자.
“마츠모토 타이요는 어떻게 해서 마츠모토 타이요가 되었는가?”*
『동경일일』, 만화에 관한 만화의 의미
『동경일일』은 30년 넘게 만화계에 몸담은 편집자 ‘시오자와’가 동경했던 만화가들을 차례로 방문하여 자신이 꿈꾸던 만화잡지를 완성해가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동경일일』은 출판 만화가 생산 및 유통되는 과정을 표면에 드러내면서 일본 만화계의 다양한 층위-편집자 시스템, 만화가의 열정과 노동,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긴장 등 을 성찰한다. 요컨대 『동경일일』은 만화에 관한 만화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많은 이들이 『동경일일』의 자기 반영성을 논의할 때 만화가를 방문하는 여정 자체에 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진지하고 경건한 여정으로부터 세스(Seth)의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를 떠올린다. 시오자와를 닮은 안경 낀 주인공이 많은 이들에게 잊힌 만화가의 흔적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가 그려낸 만화의 진심 어린 애정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다만 여기서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가론을 확장하려면,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의 세스를 포함한 대안만화 잡지 『로』(Raw)에서 기원한 작가들의 미학적 기획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 세스(Seth), 대니얼 클로즈(Daniel Clowes), 벤 케처(Ben Katcher), 크리스 웨어(Chris Ware) 등 여러 작가는 초기 신문 만화를 발굴하고 수집하여 이를 토대로 자신들의 만화 미학을 새롭게 구성해 왔다.

세스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마츠모토 타이요 『동경일일』
이러한 맥락에서, 『동경일일』의 주인공이 다소 시대착오적 작가들을 방문하는 이유는 단지 잡지 제작이라는 서사적 필요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앞선 세대의 작가를 향한 경의와 함께 무엇보다 마츠모토 타이요 자신의 방법론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다. 『동경일일』에서 시오자와가 “인생을 지탱해 준” 만화책을 처분할 때 헌책방 주인을 재차 등장시켜 이시모노리 쇼타로의 『하늘색 리본』을 시계(視界)에 부상시키고, 동봉된 박스에서 데즈카 오사무, 오토모 가츠히로, 미야자키 하야오, 우메즈 카즈오 등의 만화를 기어코 쏟아내게 만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자신의 방법론에 관하여 이렇게 언급한다. “어렸을 땐 누구도 만든 적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철콘 근크리트』를 만들 무렵 그쳤죠. 나이가 들면서 개인적으로 시도해 본 적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기 시작했습니다. 『핑퐁』이 그랬죠. 저는 고바야시 마코토의 『유도부 모노가타리』를 좋아했고, 탁구도 그런 만화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보다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저 흥미롭게 유지하고 싶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예술을 부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계속해서 흡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일본 만화의 제도 및 관습을 검토하고 대화적이고 다성적인 텍스트를 창작하며 자신의 미학을 끊임없이 갱신한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일본 만화라는 전통 속에서 자기 반영적 기획을 추진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작품을 동질화시키는 일본 만화잡지의 관습에 대한 반항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제로』와 『하나오』는 스포츠 만화의 문법을 거스르며 소년이 아닌 주인공을 내세워 성장을 거부하거나, 성장을 하더라도 그것을 아이러니하게 그려낸다. 더욱이 『핑퐁』에서는 비록 소년 주인공을 복귀시키지만, 마지막 게임을 서둘러 끝내고서는 선수로서의 스마일의 성장을 저지한 후 마츠모토 타이요 세계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노인의 달관한 미소를 짓게 한다. (소년 만화의 화신인 페코는 장르의 문법에 따라 성장을 멈추지 않지만, 그 역시 소년의 신체를 완전히 소거하여 마치 다른 존재처럼 보인다).
스포츠 만화의 전제인 성장과 소년성을 전복한 데 이어 마츠모토 타이요는 『철콘 근크리트』와 『넘버 파이브』를 통해 본격적으로 ‘텍스트 교류성(transtextuality)’*을 실험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가 『오디세이』와 『햄릿』을 변형시키고 정교화하여 『율리시스』를 창작했듯이*, 마츠모토 타이요도 자기 반영적 작업으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뫼비우스*의 작품을 토대로 『철콘 근크리트』와 『넘버 파이브』를 확장시켜 나간다.
『철콘 근크리트』는 『아키라』의 네오 도쿄와 폭주족 소년들을 변주하고, 동시에 뫼비우스의 『잉칼』을 오마주하여 첫 장면부터 수직의 낙하운동을 발생시킨다. 다음은 뫼비우스의 『아르작』 풍경과 이시모노리 쇼타로*의 『사이보그 009』 전사를 결합한 『넘버 파이브』다. 여기서 『사이보그 009』의 등장은 실로 감동적이다. 이시모노리 쇼타로의 『사이보그 009』는 어떤 작품인가? 잭 커비(Jack Kirby)가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뒤엉킨 캐릭터들을 수평축으로 180도 회전시키며 미국 만화의 액션을 혁신할 때, 이시모노리 쇼타로는 전대물 장르에서 점프를 통하여 일본 만화에 수직의 운동을 정착시킨다. 그런데 『사이보그 009』의 이 같은 수직성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비행 장면에 영감을 준 『아르작』과 조우할 때, 『넘버 파이브』는 마침내 수직성으로 진동하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레인보우 부대를 중심으로 상승과 추락의 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넘버 파이브』에서는 점진적으로 부감과 앙각, 평화와 폭력, 공존과 대립, 전체와 개체, 세계와 소우주, 현실과 환상이 상승과 하강으로 되풀이하는 물결이 펼쳐진다.


오토모 가츠히로 『아키라』, 뫼비우스 『아르작』, 마츠모토 타이요 『철콘 근그리트』
자기 반영성의 자기 실현: 마츠모토 타이요의 메타만화
장르를 전복하는 자의식과 일본 만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텍스트교류성에 이어, 마츠모토 타이요는 『동경일일』을 예비하며 일본 만화의 시스템, 독자와 예술 작품 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만화를 창작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한 권의 책으로 작품 전체를 치밀히 통제한 『GoGo 몬스터』에 관한 마츠모토 타이요의 진술이다.
“제 기억이 맞다면, 『GoGo 몬스터』가 출간되기 두 해 전에 앙굴렘에 갔었죠. 앙키 빌랄, 뫼비우스, 미켈란젤로 프라도 작가의 작업을 보면서, 저는 예술적으로나 스토리적으로나 아직 서툴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재능이 뛰어났고 앨범을 제작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저는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해야 했죠. 이런 상황에서 그들과 경쟁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제가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연재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의 시스템에서는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죠. 이때 저는 제 편집자 중 한 명인 에가미 히데키 씨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를 지지해 줬어요. 하지만 당시 편집자였던 호리 씨는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거의 3년 동안 고고 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중략)…
방드시네* 작가들은 확실히 이런 작업 방식에 익숙하지만, 페이지 마감일이 정해져 있고 편집자들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데 익숙한 일본 작가들에게는 역설적으로 이렇게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GoGo 몬스터』가 나온 후, 저는 450페이지나 되는 이러한 긴 형식의 작업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루브르의 고양이』 또한 『GoGo 몬스터』와 함께 ‘메타 만화’의 범주로 묶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을 때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려낸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지나치게 매혹돼서는 안 된다. 『루브르의 고양이』에서 루브르 박물관은 어떤 의미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 작품은 오히려 타카노 후미코의 『노란 책』에 대한 동화적 응답이다. 주인공 미치코와 눈송이를 겹쳐 놓으며 ‘유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이행’이라는 주제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소설을 그림으로 치환하여 독자와 예술의 관계를 성찰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루브르의 고양이』에서 현실 세계와 예술이 창조한 세계 사이 의 경계선은 절대적으로 침투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주인공 눈송이는 두 세계를 자유로이 왕래한다. 이는 독자와 예술의 알레고리로, 독자와 예술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고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의 세계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의미다.”* 다만 예술의 세계가 아무리 매혹적일지라도, 독자는 이 초월적 세계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눈송이는 「사랑과 신의 죽음」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유년을 떠나보내고 『노란 책』의 미치코가 걸어갔던 길을 따라나선다.
앙투안 카롱 「사랑의 신의 죽음」
선(線)에서 면(面)으로: 마츠모토 타이요의 미학적 전환
지금까지 우리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여정을 개략적으로 따라가면서, 그가 일본 만화계의 제도 및 관습을 검토하고 동시에 일본 만화 전통을 계승하여 이를 재창조한 작가임을 확인했다.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아직 전기 마츠모토 타이요에서 후기 마츠모토 타이요로의 변화, 즉 선(線)에서 면(面)으로의 전회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했다. 먼저, 전기 마츠모토 타이요의 선적인 만화란 무엇인가? 답을 구하려 한다면 『아르작』과 『잉칼』의 작가이자, 장 지로(Jean Giraud)라는 본명을 가진 ‘뫼비우스(Moebiu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뫼비우스는 마츠모토 타이요뿐만 아니라 오토모 카츠히로, 다나구치 지로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령 『철콘 근크리트』의 해설에서는 뫼비우스의 구체적인 영향력으로 『땡땡의 모험』에서 기원한 ‘명료한 선’(Clear Line)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땡땡의 모험』과 뫼비우스의 만화는 분명 명료한 선을 공유하고 있으나 그것이 펼쳐내는 세계는 현저히 다르지 않은가. 동일한 만화 형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동일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땡땡의 모험』의 명료한 선은 카툰화 즉, 단순화를 통한 전달효과의 확장을 지향한다면, 뫼비우스의 명료한 선은 오히려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선의 드라마로 옮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판화의 윤곽선에 가깝다. 뫼비우스는 균일한 선으로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존재의 위계를 무화하는 선은 『잉칼』의 추락 이미지로 상징되는 심도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며, 세계를 구체에서 추상으로 더 나아가 환상 및 초현실로 이행시킨다.
물론 마츠모토 타이요, 오토모 카츠히로*, 다나구치 지로*가 이러한 뫼비우스의 선을 단순히 답습했던 것은 아니다. 철저한 묘사로 촉발된 감각의 풍요로움과 원근법 왜곡으로 구축한 환상적 공간 감각을 수용하고서는 여기에 데즈카 오사무적 운동성을 도입한다. 그 결과 오토모의 『아키라』는 네오도쿄 공간에서 모터사이클이 질주하고,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몽환적인 동화 세계에서 역동적인 액션과 스포츠에 몰두한다. 다나구치 지로 만화의 경우 이보다는 확연히 느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도 깊은 골목과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운동이 전개된다.
먼저, 전기 마츠모토 타이요의 선적인 만화란 무엇인가? 답을 구하려 한다면 『아르작』과 『잉칼』의 작가이자, 장 지로(Jean Giraud)라는 본명을 가진 ‘뫼비우스(Moebius)’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뫼비우스는 마츠모토 타이요뿐만 아니라 오토모 카츠히로, 다나구치 지로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령 『철콘 근크리트』의 해설에서는 뫼비우스의 구체적인 영향력으로 『땡땡의 모험』에서 기원한 ‘명료한 선’(Clear Line)*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땡땡의 모험』과 뫼비우스의 만화는 분명 명료한 선을 공유하고 있으나 그것이 펼쳐내는 세계는 현저히 다르지 않은가. 동일한 만화 형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동일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땡땡의 모험』의 명료한 선은 카툰화 즉, 단순화를 통한 전달효과의 확장*을 지향한다면, 뫼비우스의 명료한 선은 오히려 자연의 모든 현상을 선의 드라마로 옮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판화의 윤곽선에 가깝다. 뫼비우스는 균일한 선으로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존재의 위계를 무화하는 선은 『잉칼』의 추락 이미지로 상징되는 심도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며, 세계를 구체에서 추상으로 더 나아가 환상 및 초현실로 이행시킨다.


에르제 『땡땡의 모험』, 알브레히트 뒤러 「네 기사」, 데즈카 오사무 「아돌프에게 고한다」
균일한 선으로 현실의 밀도와 복잡성을 흡수하여 세계 자체를 구축한 만화를 선적인 만화로 규정 해보자. 그렇다면 면적인 만화란 무엇일까? 마츠모토 타이요가 정확히 언제 면적인 만화로 이행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대신 면적인 만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먼저 『죽도 사무라이』를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죽도 사무라이』에서 마츠모토 타이요는 만화의 평면성을 본격적으로 추구했다.
왜 하필 『죽도 사무라이』일까. 『죽도 사무라이』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데, 주목할 점은 일본 만화가 종종 시대극 장르를 만화 미학의 갱신을 위한 실험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오노 나츠메의 『납치사 고요』와 『츠라츠라 와라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극을 통해 만화 형식을 확장한다. 『납치사 고요』에서는 시선을 차단하는 일본 전통가옥의 특유의 폐쇄감이 숨은 사연을 가진 범죄 조직이라는 서사와 맞물리며 만화의 직사각형 칸을 밀폐된 심리 공간으로 전환한다. 반면 『츠라츠라 와라지』에서 참근 교대원들의 의상은 이미지를 추상적 패턴으로 환원시키는 계기가 되며, 또한 그들의 행렬은 운동의 등방향성과 보조의 규칙성으로 인하여 명랑한 리듬을 페이지 전체로 확산시킨다.
여기에 당연히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베가본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에도시대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를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두 가지 이점을 확보한다. 하나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펜 대신 붓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사라는 존재를 통해 몸이라는 주제를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붓)과 몸을 일체화시키는 도전. 따라서 작가는 말한다. “나 자신이 검술을 익히고 움직임을 이해하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붓을 놀릴 수 있게 된다면, 무사시가 더 높은 수준으로 싸우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그런 육체적 도전도 해보고 싶군요.”*
그럼 마츠모토 타이요는 시대극을 통해 어떻게 만화의 평면성을 실험했을까. 에도시대의 중심지 에도(江戸)와 불가분의 관계인 ‘우키요에’를 『죽도 사무라이』의 핵심적인 조형 원리로 선택한다. 『죽도 사무라이』에서 가옥은 선과 면으로 지어진 종이집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명소 에도 100경』 판화집으로부터는 고요한 풍경을 차용하는 동시에 선으로 그어진 특유의 소나기로 페이지 전체를 흠뻑 적신다. 게다가 우키요에 판화를 둘러싼 굵은 외곽선은 만화의 칸에 적용하여, 『죽도 사무라이』의 페이지-화첩을 칸-우키요에로 직조한다. 『죽도 사무라이』는 선과 선이 빽빽하게 몰려있던 전기 마츠모토 타이요와 달리, 한껏 느긋해진 필치로 표면에 평평함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도시대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피카소의 시각적 평면성도 자연스럽게 『죽도 사무라이』 세계의 일부로 편입된다. 다양한 시점이 결합한 기하학적 얼굴이 주인공의 얼굴을 구성하며, 피카소풍 말의 형상은 무사 미코시 다이자부의 길게 늘여진 신체와 운동과 조화를 이루면서 『죽도 사무라이』의 평면성에 합류한다.


오노 나츠메 『납치사 고요』, 우키요에, 마츠모토 타이요 『죽도 사무라이』
이제 『죽도 사무라이』의 평면적 실험이 후기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발전했는지를 살펴보자. 『써니』와 『동경일일』은 순수한 선적 양식의 산물이 아니라, 선에서 파생된 깊이와 표면에서 도출된 평면성의 변증법적 산물이다. 달리 말하면, 뫼비우스적 깊이를 지닌 배경과 『죽도 사무라이』의 평면적 캐릭터가 결합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후기 마츠모토 타이요를 평면적 만화로 규정하려면, 이러한 소박한 인상비평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평면적 만화가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페이지라는 평면성의 토대에서 배경과 전경, 깊이와 평면성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마츠모토 타이요는 평면적 만화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일본 만화의 전통으로부터 두 명의 거장을 소환한다.
첫 번째 작가는 앞서 언급된 타카노 후미코로, 먼저 그가 동조한 마츠모토 타이요의 생각을 옮겨보겠다.
우산이 예뻐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 정말 아름다워서 그려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을거리는 많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늙은 장인이 우산을 돌리며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끝에는 불이 꺼지고 아내나 누군가가 맥주를 가져다주는 장면도 그려지면 좋을 것 같아요.*
타카노 후미코와 마츠모토 타이요의 대화는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을 담고 있다. 두 작가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의 만화를 직접 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작품에서는 빈번하게 일상의 특정한 국면을 다양한 시점으로 연결한 후 마지막에는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며 부감의 장면으로 끝맺는다. 이 지점에서 다양한 시점의 결합, 더 정확히 말하면 클로즈업, 미디엄 쇼트, 부감 장면 등의 결합이 페이지 전면에서 펼쳐지는 것은 평면적 만화의 핵심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써니』에서 부모와 연락이 끊긴 주인공 세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 장면을 보자. 그의 모습은 롱 쇼트와 클로즈업으로 그려진 후 마지막 칸에는 보육원을 멀리서 비추는 부감적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는 단순히 만화적 상황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보육원이라는 공간 속에 놓인, 즉,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황과 가까이 다가가야만 헤아릴 수 있는 내밀한 슬픔, 이 모든 애잔한 순간들을 종국에는 따뜻한 위로의 시선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다. 다만 다양한 시점의 결합은 서사에 의해 정당화될지라도 이와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존재한다. 『써니』의 롱 쇼트, 클로즈업, 부감 장면은 단순히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동일한 칸에서 배경과 인물이 각각 차지하는 비율의 문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앞선 장면에서 세이의 형상은 공간 좌표로부터 분리된 순수한 평면 면적으로 환원 가능하다. 주인공의 면적은 각 칸이 전개될 때마다 확장되기도 하고 수축하기도 하며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페이지의 표면에는 다채로운 칸-무늬가 우아하게 수놓아진다.
평면적 만화를 시점과 연동된 면적의 변화를 확산시키는 만화로 규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와 같은 평면적 만화에서 특권적 시점은 분명 ‘클로즈업’일 것이다. 클로즈업은 이미지를 공간적 좌표 특히 원근법적 깊이로부터 박탈함으로써, 그것을 특정한 관계망에서 분리된 넓은 표면으로 변형시킨다. 때문에 마츠모토 타이요는 평면적 만화를 정립하기 위해 타카노 후미코에 이어 우메즈 카즈오*를 전유한다. 우메즈 카즈오의 후계자라면 흔히들 이토 준지를 꼽곤 한다. 이는 우메즈 카즈오의 호러에 등장하는 기괴한 표정과 제스처, 미(美)추(醜)가 뒤섞인 인체 표면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경우 우메즈 카즈오의 숨겨진 후계자라 할 수 있는데, 얼굴을 점층적 클로즈업으로 추상화한 후 페이지 표면을 직조하는 방식을 우메즈 카즈오로부터 전수한다.
그러니 『동경일일』에서 칸으로 단단히 짜인 페이지에 수많은 얼굴들이 웅성거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고인이 된 타치마나 레이코 작가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주인공 시오자와를 상기해보자. 그의 클로즈업은 문 유리의 프레임과 문틀의 프레임 안에 배치된 후 카페 건물 밖 풍경의 롱쇼트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클로즈업으로 잡힌 측면 상으로 등장한다. 시오자와가 만화가 초사쿠에게 청탁을 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두 면의 페이지는 두 인물의 얼굴로 범람하고 마지막에는 점층적 클로즈업이 교대로 마무리된다. 시오자와에게는 각별한 순간일 테지만, 어쩌면 그 각각의 사연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동경일일』에는 고요한 관조 속에서 현저한 평면성이 치열하게 경합한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마치 평면을 확장시키고 수축시키는 반복만으로 만화를 성립시키려는 듯하다. 나는 진심으로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앞으로 『동경일일』보다 더 뛰어난 만화를 그릴 수 있을까. 이번에는 『핑퐁』의 경우처럼 단정 짓지 않겠다. 대신 마츠모토 타이요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가임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완성할 진정한 말년의 양식을 기대한다.
1) 주인공의 심리적인 성장 과정을 다루는 소설 장르 (편집자 주)
2) 에드워드 W.사이드의 저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나오는 개념으로, 예술가들의 노년에 발견되는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편집자 주)
3) 에드워드 W.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장호연 옮김, 마티, 2012, 29쪽.
4) 80년대 일본 만화계의 뉴 웨이브를 이끈 작가 중 한 명. 매 작품마다 다양한 장르와 화풍을 구사한다. 국내에 소개된 대표작으로는 『노란 책』이 있다.(편집자 주)
5) 타카노 후미코, 오타케 아키코, 『나를 해체하는 방법』, 정은서 옮김, 고트, 2020, 8쪽.
6) Taiyo Matsumoto with Inio Asano and Keigo Shinzo, https://mangabrog.wordpress.com/2014/06/14/taiyo-matsumoto-with-inio-asano-and-keigo-shinzo/
7) INTERVIEW: Manga Creator Taiyo Matsumoto
The artist behind “Tekkonkinkreet” and “Sunny” speaks to CRN!,
https://www.crunchyroll.com/news/interviews/2013/5/28/interview-manga-creator-taiyo-matsumoto?srsltid=AfmBOoqvnerBplmojwUeeEa1pTwX25b_y8YbKH_xm54B-dyYTEq4MZTM
8) 한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와 교류하면서 생기는 상호작용. 단순한 인용을 넘어 각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나 해석, 스타일를 교차시킴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편집자 주)
9) 로버트 스탬, 『자기 반영의 영화와 문학』, 오세필, 구종상 옮김, 한나래, 1998, 62쪽.
10) 프랑스의 만화가. 본명은 장 앙리 가스통 지로로 흔히 뫼비우스(Mœbius)라는 필명으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칸 배치와 섬세하고 깔끔한 선으로 초현실을 그려냈으며, 그의 스타일은 일본 만화와 SF에 큰 영향을 끼쳤다. (편집자 주)
11) 일본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한 명. 참신하고 실험적인 표현 기법과 시적인 연출로 일본 만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가면라이더> 시리즈, 『사이보그 009』 등이 있다. (편집자 주)
12) 방드 데시네(Bande dessinée)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주로 프랑스-벨기에 쪽 만화를 지칭한다. 작가주의적인 성격을 강하게 띈다. 잡지를 통해 이야기들을 선공개하고 1~2년의 시차를 두고 모음집 형태로 출판하는 형식을 택하고 있으며 페이지수의 제한이 타 나라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아스테릭스』, 『꿈의 포로 아크파크』 등이 있다. (편집자 주)
13) Matsumoto Taiyou, https://www.du9.org/en/entretien/matsumoto-taiyou/
14) 미하일 바흐찐,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전승희 옮김, 창비, 1998, 462~463쪽.
15) 80년대 일본 만화계의 뉴 웨이브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 기존의 데포르메된 작풍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묘사, 배경을 통한 내러티브 전달, 연속적인 화면 구성 등으로 일본 만화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작으로는 『아키라』, 『동몽』이 있다. (편집자 주)
16) 일본의 만화가. 일본 사소설 풍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깊은 주제 의식이 특징이다. 대표작으로 『고독한 미식가』, 『도련님의 시대』가 있다. (편집자 주)
17) 클리어 라인 스타일이라고도 불리며, 유럽의 만화가들 사이에서 주로 표현되어진 예술적 표현 양식으로써, 깔끔하고 명료한 선을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인 표현법이다. (편집자 주)
18)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김낙호 옮김, 비즈앤비즈, 2008, 38쪽.
19) 하인리히 뵐플린, 『뒤러의 예술』, 이기숙 옮김, 한명출판사, 2002, 331쪽.
20) 이노우에 타케히코, 『공백』,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3, 146쪽.
21) Taiyo Matsumoto talks shop with one of his favorite artists, Fumiko Takano,
https://mangabrog.wordpress.com/2016/07/20/taiyo-matsumoto-talks-shop-with-one-of-his-favorite-artists-fumiko-takano/
22) 파격적인 표현, 극단적으로 치닫는 전개, 작가 특유의 공포 묘사 등이 특징이다. 당대 주류였던 데즈카 풍을 넘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으로는『표류교실』,
『이아라』 등이 있다. (편집자 주) / 일본 공포만화계의 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