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칸딘스키*의 「구성(Compositions)」, 「즉흥(Improvisations)」 연작을 바라보자. 캔버스 전체에 확산한 선의 율동과 색채의 울림에서 많은 이들은 음악적 감각을 경험할 것이다. 실제로 칸딘스키는 이에 관해 “음악이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듯이 회화 역시 자연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리듬, 반복, 음색, 가락과 같은 음악의 요소들이 구상화의 매개로 사용되는 것처럼 회화도 음악과 유사한 예술이 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한다. 다음은 악보를 연상시키는—나의 경우 칸으로 짜인 만화 페이지가 떠오르는— 파울 클레*의 「다성 음악(Polyphony)」과 「리듬에 관하여(Rhythmic)」이다. 파울 클레는 수평적으로 멜로디가 전개되고 동시에 수직적으로 화성을 이루는 다성 음악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며, 자신의 회화에 색채의 대위법적 구성으로 시각적 리듬을 창출한다.
당연히 회화만이 음악에 매혹된 유일한 시각 매체는 아닐 것이다. 만화라는 매체 역시 그러한데, 예를 들어 윌 아이스너*는 만화에서 칸을 시간 조절과 전달의 기본 단위로 삼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칸과 음표를 대응시켜 만화를 일종의 악보로 인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크리스 웨어*는 자신의 작업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과 건축의 유비(類比)를 끌어온다. 특히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다”라는 괴테의 격언에 영감을 받아, 만화 창작 과정을 음악 작곡 행위에 비유하며 두 경우 모두 ‘경험의 조각을 취해 시간 속에 얼려 두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 밖에도 음악과 만화의 관계를 논의할 때 재즈, 힙합, 클래식, 밴드 음악 등을 소재로 한 수많은 음악 만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는 이처럼 음악이라는 매체를 자연스럽게 포섭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음악과 만화의 관계는 자명하지 않다. 만화는 본질적으로 무성의 매체다. 다시 말해, 만화는 시각적 매체이기에 청각적인 음악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리를 가지지 못한, 소리를 전하지 못하는 만화의 특성은 음악과 상호작용을 하는 데 있어 치명적 결함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한계는 만화의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열어준다. 물론 현재 웹툰을 포함한 디지털 만화는 시청각적 매체로 진화하고 있으며, 만화가이자 음악가인 르나르(Renard Queenston)*의 경우 만화와 공연을 결합하여 음악과 만화 사이의 확장된 지형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무성 영화를 옹호한 루돌프 아른하임처럼 ‘무성 매체’로서의 만화를 옹호하고자 한다. 침묵하는 만화는 음악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어떤 생산적 논의를 도출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음악의 시각화로 형성되는 기호화와 추상화, 칸과 페이지 구조를 기반으로 창출되는 리듬감 그리고 시각, 청각, 서사가 융합된 총체적인 음악적 경험일 것이다.
만화가 연주하는 무성 음악
음악을 다루는 만화의 주요한 과제는 ‘음악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음악을 본다는 의미는 달리 말해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과 같다. 이는 선율과 리듬을 체현한 선과 색채, 텍스트와 조형성이 결합한 음향 효과, 연주자의 몰입하는 표정과 역동적인 제스처, 청중의 감정적 반응과 해석적 논평 등 다양한 시각 기호를 연출하여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와 같은 음악의 시각화에서 음악을 경험한 이후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심상(心象)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피아노 연주를 다룬 웹툰 ≪에우리디케는 없다≫는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의 음악을 섬세하게 흩날리는 모네의 회화와 대응시킨다. 수련과 연못의 심상은 연주하는 건반을 잠기게 하고 관객을 아우르며 종국에는 연주장 전체를 감싸안는다.
한편, 인상주의 음악으로부터 인상주의적 심상을 도출하는 방식과는 달리, 밴드 음악을 다루는 『오디션』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음악적 심상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전반부와 후반부 각각 아무 소리도 녹음되지 않은 CD와 목소리 잃은 여가수의 공연을 배치하며, 무성 매체로서 음악을 다뤄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토로하는 이 작품은 음악적 심상을 어떻게 그려낼까. 그것은 음악과 결합한 언어 혹은 가사를 통해서다. 음악은 종종 하나의 서사와 동치되곤 한다. 음악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 중 하나인 가사이기 때문이다. 가사가 갖는 언어적 힘은 총체로서 음악을 쉽사리 하나의 이야기나 서사로 환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재활용 밴드가 <스카이 서핑>의 연주를 시작할 때 전체 페이지-하늘에는 비행기가 수평의 방향으로 가로지른다. 다음 “바짓단에 중력을 추로 매달고 인어처럼 미끄러지는 날 멈출 수 있다면… 가끔 새들이 날 비웃으며 우아하게 날아가지만”이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면, 주인공 국철, 미끼, 달봉, 황보래용은 이에 걸맞은 청량한 율동을 취하고 동시에 연쇄된 칸들에는 <스카이 서핑>의 수직적 운동과 새 무리의 수평적 운동이 교차하며 펼쳐진다.
『오디션』의 무대는 분명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오디션』을 포함한 일련의 만화는 음악을 재현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만화는 시각 매체로서 청각적 경험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없지만, 음악의 객관적 표기법인 ‘악보’를 통해 음악을 재현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악보는 연주와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악보를 시간적 연주 사건의 매개적 재현 또는 물질적 치환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모방(mimesis)과 비견된다.* 더욱이 회화적 재현에 대한 규약주의 이론에 따르면, 재현은 하나의 상징이며 한 상징의 지시체를 결정하는 것은 일종의 규칙이나 코드이다. 즉 X가 어떤 확립된 규약의 체계에 따라 Y를 지시한다면 오직 그때에만 X는 Y를 재현한다고 할 수 있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만화 속의 악보는 대개 음악의 재현을 초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만화 주인공이 쇼팽의 곡을 연주하고 동일한 칸에는 악보가 배치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음악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악보를 통해 쇼팽의 음악을 머릿속에서 정확히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조차 실제로 재생된 음악의 시간은 만화 칸 속의 지속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넘치거나 미치지 못한다. 악보는 음악을 재현하는 기호라기보다 오히려 음악이 연주되는 극적 상황을 지시하는 기호에 가깝다. 만화는 음악을 재현하는 매체가 아닌 환기하는 매체다.
그러니 만화 속 음악은 독자의 경험과 상상력을 자극하며 어떤 의미로 칸과 칸 사이의 간격에서 발생하는 도약을 떠올리게 한다. 구체적으로 『피아노의 숲』을 통해 음악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다층적으로 융합된 총체적 음악 경험을 탐구해 보자. 작품의 절정부, 주인공 이치노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를 시작할 때 『피아노의 숲』 전체를 수놓았던 소리의 조각들이 투명하게 반짝인다. 다음으로, 악보로 이루어진 선율이 각 칸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유려하게 이어주다가, 피아노 연주의 심상을 마법적으로 실현시켜 연주회장을 별빛 가득한 밤하늘, 피아노의 숲, 끝없이 퍼져나가는 하늘로 탈바꿈하게 한다. 지금까지의 음악의 시각화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피아노 연주를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
하지만 정말로 이치노세의 연주를 끝까지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건 이와는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이를테면 페이지 전체로 확산하는 청중과 연주자의 감정과 의식 말이다. 사실 음악 만화에서 청중과 연주자를 클로즈업하여 연주가 얼마나 아름답고 탁월한지를 환기하는 것은 특별한 연출은 아니다. 다만 『피아노의 숲』에서는 주인공, 스승, 동료, 어머니의 감정-이미지가 과잉될 정도로 의식을 전개하여 하나의 선율로 거듭날 때, 그것은 이치노세의 연주와 『피아노의 숲』의 서사와 결합하여 우리 의식 깊숙이 울려 퍼진다. 특히 마지막 3장에서 주인공 이치노세가 “어디에도 갈 수 있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훨씬 더 먼 곳으로… 어디까지고 퍼져 나가…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좀 더! 머나먼 곳까지….”라고 되뇌며 연주를 극한으로 밀어붙일 때, 『피아노의 숲』은 청중과 연주자, 시각과 청각, 서사와 형식, 칸의 연속성과 페이지의 동시성을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는 지경으로 이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가 그리는 음악은 페이지의 잉크 흔적으로 그치지 않으며 독자의 내면에서 진정으로 완성되는 것이라고.
다성 음악과 대위법
『아케비의 세일러복』은 음악 만화는 아니지만 음악과 만화의 관계를 고찰하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음악을 어떻게 시각화하는가? 우선, 아케비와 헤비모리를 거대한 피아노 밑에 숨어들게 하고는 키자키가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연주하게 만든다. 즉, 아케비와 헤비모리는 숨죽여 연주를 엿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매혹적인 음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순간의 장면은 마치 무시간적 공간처럼 문자와 배경을 완전히 비워낸 후 피아노와 하나가 된 키자키의 파편화된 신체를 역동적인 리듬감으로 엮어낸다.
또 다른 예로는, 키자키의 연주에 맞춰 춤추는 아케비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아케비는 페이지 내에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해 연속적인 동선을 그리다 어느 순간 유려한 선율로 변화한다. 이러한 『아케비의 세일러복』의 음악 장면이 유독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미소녀의 모든 상황과 모든 순간을 집요하게 포착하고자 하는 욕망이 미소녀를 대상화하다 못해 사물화로 이어지는 데서 기인할 테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음악이 재현 없는 추상적 예술이라는 점에서, 음악을 다루는 만화는 필연적으로 추상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음악과 추상 만화의 관계를 논의할 수 있지만 우선 음악으로 만화를 추상적으로 조직한 『땡땡의 모험』 시리즈 중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을 다뤄보자. 이전까지는 만화가 음악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주된 음악을 어떻게 시각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카스타피오레의 보석』 역시 작품 전체에 걸쳐 오페라 가수 카스타피오레의 노래가 울려 퍼지지만, 작가 에르제의 진정한 관심은 어디까지나 다성 음악(Polyphony)*을 만화 형식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에르제의 만화적 실험은 파울 클레의 추상적 기획과 공명한다. 클레는 ‘조형예술을 위한 음악의 대군주’라고 칭송한 바흐의 푸가를 그 원리의 출발점으로 삼고, 다성 음악을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린 모차르트의 원리를 작품 전반에 적용한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만화라는 형식은 다성 음악을 어떻게 실현할까? 다성 음악은 각 성부가 수평적으로 독립적인 주제를 전개하면서도 동시에 수직적으로 여러 성부가 화성으로 조합되는 양식이다. 이를 시각화한 형태로는 자연스레 악보를 떠올릴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만화 형식에서 음악 음표에 해당할 기초 단위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크리스 웨어의 진술을 참고해 보자. “음악처럼, 만화도 분할된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칸 사이의 여백은 이러한 시간의 구획을 표시하며, 음악에서 말하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만화와 악보는 모두 공간을 통해 시간을 표현하며 이에 따라 만화의 칸과 악보의 음표는 동등하게 대응한다. 다만,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만화의 경우 칸 내부의 인물들 역시 일련의 음표로 간주될 수 있다.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그러한데 형상적 측면뿐만 아니라 옷의 색채 측면에서도 서로 뚜렷하게 구별된다. 예컨대 주인공 땡땡의 음표는 칸-오선지 연속체에서 알레그로(Allegro)와 아다지오(Adagio)로 번갈아 가며 연주된다. 또한 집사, 아독 선장, 카스타피오레, 땡땡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말린스파이크 홀의 공간을 수평으로 펼쳐낸다. 게다가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에서 소리는 사건의 주요 시발점으로 기능하며 가령 “까아꿍” 음성과 함께 카스타피오레, 의상 담당자, 반주자가 칸을 따라 차례로 아독 선장 앞에 등장하고, “딩 동” 초인종이 울릴 때는 집사가 일련의 공간을 통과한 후 문을 열자, 다음 페이지에서는 수평으로 길게 늘인 칸에 집시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을 대위법의 측면에서 검토해 보자. 아독 선장이 전화하는 동시에 앵무새가 말을 따라 하고 그 와중에 카스타피오레의 노래가 악보로 시각화되어 칸 스트립(strip)과 평행하게 배치된다. 이 장면은 여러 인물이 동시에 말하거나, 서로 다른 사건이 벌어지기에 다성 음악이라 할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하게 얽히고 뒤엉켜 있어 대위법적으로 조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은 어떻게 대위법을 구성할까. 여러 만화적 실험이 있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평면성과 깊이의 전환이다.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은 땡땡, 아독 선장, 해바라기 박사, 카스타피오레 등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선율을 전개하지만, 악보의 음표처럼 단순히 평면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깊이 있는 공간에서는 전경과 배경에 각각의 인물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면서도 동시에 대위법적 구조를 이룬다. 더 나아가 특정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들을 전경에 위치시켜 공간을 평면화했다가, 그들의 연기가 끝나고 배경으로부터 새로운 중심인물을 불러들일 때는 공간에 깊이를 도입한다. 결국 『카스타피오레의 보석』은 평면성과 깊이를 끊임없이 전환하며 페이지 전체에 등장인물의 풍요로운 화성을 울려 퍼지게 한다.
칸-페이지 무대의 추상 만화 오케스트라
추상 만화는 재현과 서사를 최소화하거나 전면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만화 매체의 환원 불가능한 본질을 탐구하려는 기획이다. 여기서 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칸딘스키에 의거하면 점, 선, 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만화라는 매체에서 재현과 서사를 제거한 이후에도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보면, 결국 그것은 칸으로 조직된 페이지다. 이 같은 만화의 공간-위상적 장치(spatio-topical apparatus)는 공간이 구획되고 분절된 구조이며 그 안에서 프레임들은 공간적 관계를 맺으며 조직된 총체를 이룬다.* 분리되는 동시에 연대를 이루며 무엇보다 음악의 측면에서 음악의 3대 요소인 리듬, 선율, 화성을 본질적으로 내재한다. 리듬은 하나의 칸에서 다음 칸으로 시선이 이동할 때 발생하며, 선율은 이들 칸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형적 흐름을 형성할 때 출현하고, 화성은 페이지 전체 차원에서 일련의 칸 연속체가 특정한 관계를 이룰 때 생성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카티아 세라오(Cátia Serrão)*의 「습득(acquisition)」을 살펴보자. 각각의 칸들은 내부의 다종다양한 색 면과 시각적 리듬을 반향해 고유의 진폭과 운동을 발생시킨다. 이어서 파스칼 마테이(Pascal Matthey)의 『978』*이다. 3행 2열 격자 구조의 이 작품은, 기저 리듬의 반복성 속에서 끊임없이 뒤틀리는 다형적 물질을 역동적으로 변형시킨다.
마지막으로 『Universe A』와 관련한 안드레이 몰로티우(Andrei Molotiu)*의 논평이다. 그는 기존의 추상 만화가 단순한 형식에 머무는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장편 추상 서사를 구상한다. 이때 참고한 것은 다름 아닌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교향곡으로, 단순 반복에 그치지 않고 주제를 대조하고, 해체하고, 상호 직조함으로써 복합적인 추상 만화 형식을 구현한다.*
이때 주목할 점은 추상 만화가 주제를 대조하고 해체하며 상호 직조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동시적으로 배치하려면 어떤 지지체가 필요할까. 재차 강조하자면, 그것은 칸으로 조직된 페이지다. 만화의 음악은 칸의 순차적 관계 속에서 페이지라는 공간에 동시적으로 공존한다. 특히 칸의 순차성과 페이지의 동시성 사이를 빈번하게 넘나들 때, 이러한 만화적 운동을 만화적 국면(aspects) 간의 전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면이란 지각 경험의 주체에게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바를 가리키며, 지각 주체는 단일 대상을 지각할 때 여러 이유로 자신이 지각하는 대상의 특정한 국면들에 지각한다.* 요컨대 만화 독자는 칸-페이지라는 동일한 개체로부터 두 국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추상 만화는 일반 만화의 경우와 달리 ‘오리-토끼 그림’처럼 전면적인 국면의 전환이 발생하지 않는다. 칸의 순차성에서 페이지의 동시성으로 전환이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전환은 즉각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경우 한 색을 오래 응시한 뒤 다른 색을 볼 때 발생하는 잔상처럼, 순차성과 동시성의 경계 지점에서 여러 칸이 뒤섞인 혼합적 국면이 출현하기도 한다.
이제 추상 만화라는 무대에서 협연하는 오케스트라를 감상해 보자. 동일한 크기와 간격의 칸들이 규칙적인 리듬을 형성하다가 길게 늘여진 칸이 당김음처럼 삽입되어 다채로운 리듬감을 창출한다. 선형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칸-선율이 전개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칸과 칸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며 자유로이 확산된다. 수평의 차원에서 수직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페이지라는 장을 펼쳐보자. 복수의 선율들은 동시에 공존하며 대위법적으로 엮이는 가운데 종국에는 하나의 총체로서의 심상이 우리의 시야에 떠오른다.
1) 바실리 칸딘스키는 추상표현주의계의 선구자로 점, 선, 면, 색채 만으로 구성된 그림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음악을 그림으로 환원시켜 음악의 율동감과 리듬감을 그림으로 담아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든 음악의 원천 재료는 악보다. 악보는 기호와 문자, 숫자로 구성된 음표의 조합인데, 나에게 미술의 원천 재료는 순수한 시각적 조형요소 즉, 점, 선, 면, 색채로 이뤄진 추상화다. 점, 선, 면, 색채는 악보의 음표와 같은 것이다” (편집자 주)
2) 최돈일, 『추상 애니메이션의조형 언어 연구-한스 리히터와 오스카 피싱거 작품을 중심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연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2022, 195쪽.
3) 파울 클레는 스위스의 추상 화가이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음악적인 요소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멜로디를 선으로, 박자를 도형으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탐구했다. 색채, 재료와 기법에 한계를 두지 않고 이를 융합한 자신만의 ‘융합 예술’을 선보였다. (편집자 주)
4) 윌 아이스너는 미국의 만화가이다. 당시 평면적이었던 만화에 배경 미술, 다종다양한 컷의 구성, 강렬한 명암 등을 차용한 혁신적인 만화 표현을 선보였다. 만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그의 이름을 딴 만화상인 ‘아이스너 상’이 있다.(편집자 주)
5) 윌 아이스너, 『그림을 잘 엮으면 만화가 된다<1>』, 이재형 옮김, 현실문화연구, 30쪽.
6) 크리스 웨어는 미국의 만화가이다. 만화에 광고나 설명서의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건축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조밀하고 디테일한 그림을 그려냈다. 국내에는 『러스티 브라운』으로 소개된 바 있다. (편집자 주)
7) 캐나다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동물형의 인간 캐릭터 이미지로 활동한다. 자체 레이블로 Lapfox TRAX가 있다.
8) Auteurs et autrices / Interview de Romain Renard – Melvile, plus qu’une bande dessinée,https://www.bdtheque.com/interviews/283/romain-renard-melvile-plus-qu-une-bande-dessinee
9) 전대환, 『비개념 원리』, 고트, 2025, 219쪽.
10) Kieron Brown, 『Musical Sequences in Comics』, The Comics Grid: Journal of Comics Scholarship, 2013, Art.9, p.4.
11) 노엘 캐럴, 『예술 철학』, 이윤일 옮김, 도서출판b, 2019, 69쪽.
12) 다성음악은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멜로디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음악을 이른다. (편집자 주)
13) 장원, 『클레의 회화에 적용된 모차르트의 다성음악적 원리 연구』, 『현대미술사연구 Vol.- No.50』, 현대미술사학회, 2021, 122쪽
14) Thierry Groensteen, 『Comics and Narration』,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14, p.12.
15) 카티아 세라오는 포르투갈의 예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림 외 사진, 자수, 만화 등을 교차하는 등, 추상적인 요소와 만화적인 표현이 결합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편집자 주)
16) 파스칼 마테이는 스위스의 만화가이다. 자서전의 성격이 강한 독립 만화를 주로 선보인다. 그중 『978』은 추상 콜라주로 이루어진 만화 앨범이다. (편집자 주)
17) 안드레이 몰로티우는 미국의 추상만화가이자 미술사학자이다. 추상화의 특징을 만화의 연속성과 결합시킨 것이 특징이다. (편집자 주)
18) On Universe A and Abstract Comics, https://www.shenandoahliterary.org/712/preface-to-universe-a/
19) 전대환, 『비개념 원리』, 고트, 2025, 154~1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