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31.
송가, 은소 작가님 인터뷰
인터뷰이: 송가, 은소 작가님
인터뷰어: ThereYouAre 편집부
*본 인터뷰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열람에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금번 송가, 은소 작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으며, 웹툰 《체크포인트》를 대상으로 한다. 《체크포인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능력자의 위기와 극복을 다룬 시즌1, 관리자가 등장하며 도시 전체가 루프에 빠지는 시즌2, 그리고 능력자가 운명이라는 무한 루프를 자각하게 되는 시즌0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듯 시즌을 거듭하며 확장은 주제, 구성, 능력자의 생각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재미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마음이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새로움과 정합성에 대한 고민, 그리고 독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자세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루프는 이런 관리자와 능력자의 싸움에서 오는 재미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가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인터뷰에서는 이야기의 확장에 대해 다룬다. 1부에서는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원칙을 다루는 〈1부: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 다지기〉와, 작품의 주제 의식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작가 2분이 작품과 사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담긴 〈2부: 주제 의식의 확장〉으로 구성했다.
〈1부: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 다지기〉
– 페어를 이루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그림 작가님께서는 능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였지만, 만화 쪽 작업은 학교 과제 이외에는 해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른 작가와 다른 필명으로 소박한 작품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을 때, “왜 나랑은 작업을 해보자고 하지 않느냐?”며 그림 작가님께서 물어오셨고, “뭐 자네는 그림 실력이 대단하니까 한 번 작업해 봐도 좋겠지.” 이런 마음으로 섣불리 시작한 작품이 어느새 10년 동안 연재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 두 분이 이야기나 캐릭터의 방향을 정할 때, 가장 많이 토의된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먼저 ‘우리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는 이야기와 행동인가?’, ‘우리가 독자라면 과연 이 부분을 그럭저럭 잘했구나 하고 이해하며 넘어가 줬을 것인가?’였던 것 같습니다.
– 《체크포인트》의 이야기 구조나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중심이 잡혀있어 이야기가 힘 있게 진행된다고 느껴집니다. 이렇듯 집중력 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구성하시나요?
아무래도 이야기의 통일성이겠습니다. 극이 올바른 흐름으로 가고 있는지, 지금이 캐릭터가 하는 행동은 이치에 맞는 것인지, 세계관은 올바르게 유지되고 있는지. 같은 원고를 몇 번이나 되돌아 확인하며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글 작가님과 그림 작가님이 각기 다른 우선순위를 두었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조율하고 해결하셨나요?
저는 아직 실력도 경험도 모두 부족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끌어가거나, 콘티의 흐름을 너무 길게 잡는다거나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림 작가님께서는 흔들린 중심을 잡아주시고, 치명적인 실수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수일을 고생한 작업물이 한 번 날아가는 일이기에 비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간 마감이라는 일정의 한계를 뻔히 알고 있는 그림 작가가 이 정도로 문제를 제기를 할 정도라면 독자분들께서는 얼마나 큰 오류를 느끼실지 생각하며 몇 번이고 다시 콘티를 짰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었으나 애초에 협업을 시작하면서 이런 지적과 토론을 가감 없이 하라는 것이 제가 요구한 조건이었기에 얌전히 따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동일하기 때문에 서로의 주장을 진지하게, 차분하게 설명하다 보면 협의점이 잡히곤 했습니다.
– 계속해서 협업 방법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체크포인트》는 그림과 글, 둘 다 굉장히 세밀하게 진행됩니다. 가령 〈시즌2 1화 루프시티 (1)〉화에 유주를 도와줬던 사람들이 이후에 모두 광신도가 되어 계속 등장하는 식으로요. 이런 복잡한 세계관과 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점을 중점으로 두었나요?
처음엔 글 작가인 제가 디테일의 욕심을 부리면서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댑니다. 그럼 그림 작가는 좀 더 현실적으로 가짓수를 커팅해줍니다. 규모와 인물을 축소하고 좀 더 농축된 에피소드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너무 지나치거나 협소하지도 않은, 두 사람이 이게 우리 작품의 색깔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지점이자 합의점에 도달한 뒤 세계관을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 《체크포인트》는 구상과 구현의 균형감이 좋죠. 동시에 작품은 말로써 설명하기보다는 상황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같이 상황을 만들 때, 어떤 부분을 특히 고려하시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한정된 지면 아래에서 제 나름의 프레임을 짜고 이야기를 달리게 하는 방법이 주로 말과 몸이 함께 움직이는 연극적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흔히 합을 맞춘다고 표현하는, 리듬감이 있는 컷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짜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마주 보고 열심히 대화만 주고받아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런 때마다 어떻게든 이 친구들을 움직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 《체크포인트》의 트릭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왔나요?
제가 쓰는 이야기 속의 시간 능력자는 일종의 탈출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쇠사슬에 두 손이 묶인 상태에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도구인 시간을 사용해 함정과 밀실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그 전문성이 있다고요. 그렇기에 정말 빠져나오기 어려울 만한 장소가 보이면 우선 주인공을 밀어 넣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주인공의 목숨은 물론이고, 저와 그림 작가 두 사람의 작가 생명을 건 탈출 쇼가 벌어지는 겁니다. 실패한다면 작품이 박살 나고 저도 밥을 못 먹게 되니 트릭의 답을 필사적으로 구해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트릭의 딜레마를 다루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체크포인트》에서 트릭이 가진 기술적 딜레마-예: 〈시즌0 복권당첨편〉-와, 트릭이 유발하는 도덕적·감정적 딜레마-예: 〈시즌2 루프시티〉-로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런 서로 다른 딜레마를 구성하고 표현할 때, 어떤 점을 달리 고려하시나요?
등장인물들이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딜레마는 비슷하게 작용하는 듯하지만, 제 경우에 전자와 후자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 딜레마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서운 이야기나 재밌는 이야기를 할 때처럼>, 오로지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스릴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주인공이 몸으로 고생하고, 직접 부딪치면서 추리 소설의 그것처럼 결국엔 정답을 찾아내고 가능한 한 멋지게 탈출합니다.
그에 반해 도덕적 딜레마는 좀 더 본격적인 사고실험이 됩니다. 괴롭고, 머리 아프고, 심지어는 명확한 대답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딜레마는 <친구들을 거실에 불러놓고 차를 마시며, 혹은 맥주를 꺼낸 뒤 흥미로운 ‘질문’을 꺼내어 토론을 여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과 이런 주제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이런 고민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는 작가적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 작품 속에는 세계의 큰 틀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2부의 루프시티 바깥같이, 독자로서는 궁금해질 만한 세부적인 설정들이 존재합니다. 세부 설정들을 독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지, 혹은 의도적으로 남겨둘지에 대한 기준은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시나요?
작품의 모든 설정을 다 보여주는 것은, 살아있는 나무를 굳이 뿌리까지 전부 끄집어내는 일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매력을 상실하고, 또한 그 이야기 전체의 생명력을 상실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요. 그래서 저도 제 머릿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부분만, 상급품만 떼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게다가 작품 내에 설치한 설정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작가로서 욕심을 부렸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루프시티 내부와 외부 안에서, 시즌0의 타임라인 안에서 기능할 수 있는 충분히 흥미로운 설정들이 더러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깊이 들어갔다간 작품을 보시는 독자님들께서 집중력을 잃어버리실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체크포인트》가 루프물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너무 장르적 고인 물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시즌1이 개별 에피소드별 사건 해결이 중심이었다면, 시즌2부터는 거대한 주제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독자분들과 페이스를 맞추는 것입니다. 작가 위주로 극을 진행하다 보면 속도를 맞추겠다는 핑계로 흔히 말하는 “땅에서 발이 떨어진” 행동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빠른 전개를 위해 극의 인물들이 너무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감이 안 되는 대사를 말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에피소드 식의 《체크포인트》와 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실 수 있도록, 또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알맞은 템포로 걷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 이야기는 크게 보면 능력자와 관리자의 대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행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즌2에서는 관리자의 책략이나 그가 던지는 고민과 모순들이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시즌0에서는 그간 나오지 않았던 능력자의 인간적인 면, 내면적인 생각들이 많이 등장하면서도 여전히 관리자는 얼굴을 가리고 내면을 보여주지 않죠. 이러한 구도나 내면, 외형에서 차이를 둔 이유가 있으실까요?
관리자라는 인물의 모티브는 단 한 줄의 댓글이었습니다 <시간 능력 현대물 판타지>를 작업하는 작가분이라면 무조건 보시게 될 댓글 중 하나인 바로 “왜 그런 좋은 능력을 갖추고 코인이나 주식을 하지 않느냐”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과연 시간 능력자 같은 인물이 주식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리 차트를 보고 온 듯 한 달 안에 계속해서 50배 100배의 수익을 내버린다면? 금융시장을 초토화할 수 있는 그런 괴물이 시장에서 계속 활개 치도록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까요?
그래서 관리자는 능력자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능력자를 알아보는 능력만으로 가장 심각한 천적이 된 인물이자, 코끼리 위에 올라탄 조련사처럼 잔인하게 약점을 찌르고 괴롭히지만 사람 자체는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습니다.
우리 중 누구라도 능력자를 처음으로 ‘발견’한다면 저런 인물처럼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시선으로 만들어 본 캐릭터이기에,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익명’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 하지만 시즌2 마지막에서는 관리자의 얼굴이 공개됩니다.
너무 많은 부분을 물음표로만 남겨놓으면, 독자분들에게 스트레스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아주 큰 단서를 남겨두어 아예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이후 시즌에 얼굴을 가리고 등장하는 관리자의 아이덴티티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 시즌1은 단순한 시간 능력자의 일상 중심의 선형적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시즌2와 0에서는 구조적으로는 원형에서 나선 형태로, 주제적으로는 윤리나 운명 같은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이런 서사와 주제의 확장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나요?
자연스럽게 생긴 흐름에 가깝습니다. 시즌1에서는 주인공도 저희도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효능감에 젖어 있었다면, 시즌2부터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시즌0에서는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요.
우스운 점은, 주인공이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저희도 비슷한 지점에서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는 점입니다. 곤경을 벗어날 대단한 재능이 없었기에 저희도 주인공과 비슷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몇 번이고 같은 한계에 몸통을 부딪치며, 관련 서적과 작품들을 둘러보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론 몹시 답답하고 더디지만, 지금도 저희는 작품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작품과 같이 익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참고하신 작품들은 어떤 게 있나요?
루프물의 아버지인 《사랑의 블랙홀》이 첫 번째입니다. 영화 버전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재밌게 보았습니다. 《릭 앤 모티》는 몇 번이고 돌려보았던 것 같습니다. 작품에 참조가 되는 것도 있겠으나 그저 재밌어서 지금도 계속 봅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